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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초동맥질환(PAD) 환자의 3명 중 1명은 뚜렷한 자각 증상이 없습니다. 저도 당숙께서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혈관 질환이 이렇게 조용히 진행된다는 걸 실감하지 못했습니다. 다리가 좀 저리고 차갑고, 걷다 보면 종아리가 뻐근한 증상 — 이게 단순한 노화가 아니라 혈관이 보내는 경고 신호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오늘 정리해 봤습니다.

걷다가 쉬면 나아지는 그 증상, 그냥 넘기면 안 됩니다
당숙 소식을 들은 뒤 저도 몸 상태를 돌아봤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다리 혈관 이상 신호를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처럼 심각하게 받아들인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말초동맥질환(PAD)이란 심장에서 다리 끝까지 혈액을 보내는 하지 동맥 안쪽에 LDL 콜레스테롤 같은 노폐물이 쌓이고 염증이 반복되면서 혈관이 점점 좁아지는 질환입니다. 여기서 죽상경화(Atherosclerosis)란 혈관 내벽에 플라크가 축적되어 혈관이 딱딱해지고 좁아지는 현상을 말하는데, 이게 다리 혈관에 먼저 나타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가장 전형적인 증상이 바로 간헐적 파행입니다. 간헐적 파행이란 일정 거리를 걷고 나면 종아리나 허벅지, 엉덩이가 아프다가 멈춰서 10분 이내로 쉬면 신기하게 좋아지는 증상을 뜻합니다. 절뚝거릴 '파(跛)', 걸을 '행(行)' — 말 그대로 걸을 때만 나타나고 멈추면 사라지는 통증입니다. 저도 이 설명을 처음 접했을 때, 주변에서 "조금만 걸어도 다리가 무겁다"고 했던 분들 얼굴이 바로 떠올랐습니다.
문제는 이 증상을 허리 디스크나 척추관 협착증, 아니면 그냥 나이 탓으로 돌리기 쉽다는 겁니다. 실제로 관절 통증과 구분이 어려울 수 있지만, 말초동맥질환은 쉬면 10분 안에 회복된다는 점이 다릅니다. 관절 문제는 자세를 바꿔도 통증이 지속되는 경우가 많고, 혈관성 파행은 딱 멈추는 순간 회복됩니다.
더 위험한 신호는 가만히 있어도 발가락이나 발 앞쪽이 아픈 경우입니다. 이걸 허혈성 통증(Ischemic pain)이라고 하는데, 혈류가 심각하게 차단됐을 때 나타나는 증상으로 방치하면 조직 괴사, 심한 경우 절단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발이나 발가락의 상처가 2주 이상 낫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출처: WHO 심혈관질환 팩트시트
자가 체크 10가지, 제가 직접 해봤습니다
제가 직접 체크해봤는데, 처음엔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했던 항목들이 생각보다 여러 개 해당됐습니다. 아래 10가지 항목은 각각 중요도에 따라 점수가 다르게 매겨집니다. 총점 27점 만점 기준으로 봐주세요.
- 걸으면 종아리·허벅지·엉덩이·발이 아프고 쉬면 좋아진다 (3점 — 간헐적 파행의 핵심)
- 오르막길·계단·빠른 걸음에서 다리가 먼저 버겁다 (2점 — 산소 요구량 증가 시 악화)
- 걸을 때 다리가 저리거나 힘이 빠진다, 통증 없이도 나타날 수 있음 (2점)
- 가만히 있어도 발가락 또는 발 앞쪽이 아프다 (4점 — 허혈성 통증, 위험 신호)
- 발이나 발가락 상처가 2주 이상 낫지 않는다 (4점 — 혈류 부족으로 치유 지연)
- 한쪽 발이 유난히 차갑거나 색이 다르다 (3점 — 양측 혈류 차이)
- 다리를 올리면 발이 창백해지고 내리면 붉어진다 (3점)
- 한쪽 다리 털이 줄거나 발톱이 잘 자라지 않고 두꺼워진다 (2점 — 만성 혈류 부족)
- 한쪽 종아리 근육이 눈에 띄게 가늘어진다 (2점 — 근육 위축)
- 발등이나 발목 안쪽 맥박이 약하거나 잘 느껴지지 않는다 (3점)
총점 기준으로 보면, 0~2점은 증상이 적은 편이지만 위험인자가 있다면 안심하기 어렵습니다. 3~5점은 반복되면 혈액 검사와 내과 상담이 권장됩니다. 6~9점은 혈관외과나 순환기내과에서 초음파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고, 10점 이상이라면 적극적인 검사가 필요합니다.
단, 총점과 무관하게 4번(허혈성 통증)과 5번(상처 불회복)에 해당한다면 응급 상황일 수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체크리스트는 병원 방문을 결정하는 참고 도구이지, 확진 기준으로 받아들이면 곤란합니다. 점수가 낮아도 위험인자가 겹쳐 있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다리 혈관 문제는 심장과 뇌까지 연결됩니다
당숙께서 뇌졸중 진단을 받으셨을 때 저는 가장 먼저 이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소에 다리 불편하다는 말씀을 하셨던 것 같은데.' 그냥 나이 드셔서 그러려니 했던 게 마음에 걸렸습니다.
말초동맥질환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다리 혈관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하지 동맥에 죽상경화가 진행됐다는 건 심장 혈관(관상동맥)이나 뇌혈관에도 같은 변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신호입니다. 실제로 임상 연구들에서 말초동맥질환 환자가 2~4년 사이에 심근경색·뇌졸중 같은 주요 심혈관 사건을 겪는 비율이 10~15%에 달한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출처: American Heart Association, Circulation Journal
위험인자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65세 이상 연령, 흡연력(과거 포함), 당뇨병, 고혈압, 고지혈증, 만성 신장 질환, 기존 관상동맥질환이나 뇌졸중 병력, 복부 대동맥류, 가족력 — 이 중 두 개 이상이 해당한다면 증상이 없어도 주의군으로 봐야 합니다.
제가 접한 실제 사례에서 63세 여성 환자분은 고지혈증과 고혈압이 경계 수치에 머물러 약을 안 드시다가, 아버지 쪽 심혈관 가족력이 있었고, 걷다 보면 종아리가 뻐근한데 쉬면 괜찮아지는 증상이 있었습니다. 발톱이 두꺼워지고 수족냉증도 있었는데 원래 그런 체질이라 여기셨다고 합니다. 이분은 생활습관 교정을 적극적으로 진행한 결과 3~4개월 후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정상 범위로 내려왔고 다리 냉증과 저림도 줄었다고 하셨습니다. 다만 이건 개인 사례이고, 모든 환자에게 같은 결과가 나오는 건 아닙니다. 저는 이 사례에서 중요한 건 경계 수치일 때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라고 봤습니다.
흡연은 특히 주목해야 할 위험인자입니다. 흡연이 하지 동맥 혈관벽을 직접 손상시키고 죽상경화 진행을 가속화한다는 건 여러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된 사실입니다. 현재 흡연뿐 아니라 과거 흡연력도 위험인자로 분류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다리가 저리고 차가운 게 말초동맥질환인지 어떻게 구분하나요?
A. 가장 먼저 볼 포인트는 '멈추면 10분 안에 나아지는가'입니다. 말초동맥질환의 간헐적 파행은 걸을 때만 나타나고 휴식하면 회복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반면 허리 디스크나 관절 문제는 자세를 바꿔도 통증이 지속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양쪽 발의 온도 차이나 색 차이가 뚜렷하다면 혈관 문제를 좀 더 의심해볼 수 있습니다.
Q. 자가 체크리스트 점수가 낮으면 안심해도 되나요?
A. 점수가 낮아도 당뇨, 고혈압, 흡연력, 가족력 같은 위험인자가 두 개 이상 겹친다면 안심하기 어렵습니다. 자가 체크리스트는 병원을 갈지 말지 판단하는 참고 도구이지, 질환 여부를 확진하는 기준이 아닙니다. 위험인자가 있다면 증상이 없어도 정기 검진 시 혈관 상태를 함께 확인받는 게 좋습니다.
Q. 말초동맥질환이 의심되면 어느 과를 가야 하나요?
A. 증상이 6점 이상이라면 혈관외과나 순환기내과를 찾아가 하지 동맥 초음파 검사를 받아보는 게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평소 고혈압이나 당뇨 때문에 내과를 다니고 있다면 진료 시 다리 증상을 함께 이야기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발가락이 가만히 있어도 아프거나 상처가 2주 이상 낫지 않는 경우라면 총점과 무관하게 빠른 진료가 필요합니다.
Q. 말초동맥질환이 생기면 심장이나 뇌에도 문제가 생기나요?
A. 다리 혈관에 죽상경화가 진행됐다는 건 심장 혈관이나 뇌혈관에도 비슷한 변화가 함께 진행되고 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임상 연구에서 말초동맥질환 환자의 2~4년 이내 주요 심혈관 사건 발생률이 10~15%로 보고된 바 있습니다. 다리 증상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신 혈관 질환의 일부로 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결론
당숙 소식을 듣고 나서 제가 가장 후회했던 건, 주변에서 다리 불편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혈관 질환은 심근경색이나 뇌졸중처럼 극적인 형태로만 오는 게 아닙니다. 걷다가 다리가 뻐근한데 쉬면 나아지는 것, 발이 유독 차가운 것, 발톱이 두꺼워지는 것 — 이런 작은 신호들이 쌓여가는 과정이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정보는 본인보다 가족이 먼저 챙겨드려야 할 때가 많습니다. 부모님이나 주변 어르신 중에 조금만 걸어도 힘들다거나 다리가 차다고 하시는 분이 있다면, 오늘 소개한 10가지 체크리스트를 한번 같이 살펴보시길 권합니다. 6점 이상이거나 위험인자가 두 개 이상 겹친다면 혈관외과나 순환기내과 방문을 진지하게 고려해보셨으면 합니다.